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된 이탈리아인 저자가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만화로 그린 책.
얇기도 하고 만화로 되어 있어서 도서관에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알바니아와 아르메니아가 헷갈려서 이런 관계였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도를 보니 터키의 동쪽에 위치한 나라가 아르메니아.
세계 1차 대전 당시, 터키는 오스트리아와 독일과 동맹을 맺어 세르비아, 러시아,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던 중,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협력하여 터키를 공격하려고 하자, 동부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이를 미리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르메니아 인들을 추방하게 되었다('처음 읽는 터키사' 참조)고 터키 정부는 말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약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학살되었고, 그 방법 또한 아주 끔찍했다고 한다.
세계사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종교적 갈등과 인종 갈등 또한 정말 무서운 것이고.
발칸 반도에서도 끊이 없이 인종간, 종교간의 분쟁이 일어났듯이 터키와 주변 국가 또한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사람끼리 어떻게 저렇게 끔찍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도 여전히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있고, 특히 최근 들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하지만,
일단 한 민족이고, 종교문제가 크게 대두되지는 않아서 그런지, 국가 내에서의 이런 문제가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일제시대 때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이 떠올라 같이 분노하게 되기도 하고.
만화 사이사이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 적어왔다.
잠시 감정의 소용돌이에 사로잡혀 나는 생각했다.
하느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가 깨었을 때 집은 다시 텅 비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그 끝없는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 아즈민 T 베그너
학교에서 학생에게 특정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 연대를 질문했을 때,
학생이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혼동하여 3세기 이상이나 틀리게 대답했다면,
이제 그러한 비극들이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행이 자행되었든 아니든 이제는 아무 상관이 없다.
- 페르디난도 카몬
민주주의
아무 발전도 없습니다. 계속 춤을 추세오.
- 페데리코 타반
2. 처음 읽는 터키사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터키),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현재 터키의 땅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
역사교사모임에서 만들었기에, 교과서 읽듯이 쉽게 읽힌다.
중간중간 지도로 그 지역의 변화를 알려줘서 좋았다.
처음부터 터키 민족이 살았던 것이 아니고,
철의 제국 히타이트 - 그리스 로마 제국 시대 - 초기 기독교 문화 전파 -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이 과정을 거치며 기독교 중심으로 한 비잔티움 문화권에서 이후 튀르크족의 이슬람 문화권으로 넘거가게 되었다.
비잔티움 문화의 꽃, 성소피아 성당-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의 성전보다 더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신즌의 대리석 기둥을 가져다 만들기도 했다고. 정사각형 몸체에 커다란 돔지붕을 올리고, 벽과 돔이 만나는 부분에는 아치형 창문을 만들고 색유리로 장식. 내변은 화려한 모자이크화로 장식.
실제 터키인의 조상인 튀르크족은 몽골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민족이었다. 튀르크족은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한 동튀르크제국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서튀르크 제국으로 나뉘어 발전했으며, 서튀르크 제국이 오늘날의 터키인의 조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책에도 등장하는 '둴궐'이 튀르크족으로 말하며, 둴궐은 중국이 튀르크족을 낮추어 부르는 표현이라고 한다.
이런 유목민족의 영향으로 오스만 제국의 대표적인 궁전인 토프카프 궁전의 지붕 모습은 게르의 모습과 비슷.
10세기 무렵 튀르크족이 처음으로 터키 땅인 아나톨리아 지역에 등장. 그 중 셀주크 튀르크가 대제국을 건설. 하지만 유럽에서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십자군 원정단을 파견하면서 유럽과 충돌이 발생. 셀주크 제국이 약화되는 시기에 룸 셀주크가 세워지고 튀르크-이슬람 문화가 발전. 비단길오 이때 발전. 셀주크 제국은 대상 무역을 적극적으로 지원.
몽골의 침입으로 룸 셀주크 왕족은 무너졌으며 이후 오스만 공국이 세워짐.
오스만 공국은 비잔티움 제국을 침략하고 영토를 넓히면서 제국으로 발전. 제7대 술탄 마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림.
많은 학자들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책과 문화유산을 유럽으로 가지고 와서 르네상스가 발달하는 데에 영향을 주기도 함.
마흐메트 2세는 성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모스크로 바꿈.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의 원칙에 따라 모자이크화를 지우려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아름답다고 느껴 그 위에 석회를 발라 덮기도 하였고, 이후 터키 공화국에서 석회를 벗겨내 현재까지 모자이크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야소피아'라고 불리게 됨.
최대한 콘스탄티노플을 보존하면서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며 도시를 바꾸기 시작. 골든혼이 바라보이는 성소피아성당 옆 언덕에 토프카프 궁전(황제의 문/평안의문/지복의문-하렘)을 지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딴 마흐메트 모스크를 짓고, 그랜드 바자르(카팔르 차르시)를 지음.
또한 모든 사람이 어울려 사는 도시를 만들고자 함. 비잔티움 시대의 유명 건축물 보전, 이탈리아나 그리스 학자, 예술가들을 추대해 문화 유지. 다양한 종교, 인종이 모이자 대립과 갈등이 생겨, 밀레트 제도를 도입. 종교 공동체 또는 민족을 뜻하는 밀레트는 종교별로 구성된 종교 자치제.
16세기 술레이만 1세 때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으로 발전. 술레이만은 법을 만들고 통치 제도를 정비.
미마르 시난이라는 뛰어난 건축가가 오스만 제국을 대표하는 술레이마니예 모스크를 건축. 백성과 가까운 곳에 만들어 백성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함.
이후 슬탄 아흐메트 1세는 성소피아성당을 뛰어넘는 모스크를 짓게 함. 그리하여 슬탄 아흐메트 모스크(블루 모스크)가 지어짐.
터키의 기존 화법은 세밀화법-신이 본 세계의 모습을 그림, 원근법 무시. 이후 베네치아 화풍이 유입되면서 보는 그대로 그리는 그림이 생겨남.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발전한 유럽을 따라잡지 못하고 오스만 제국은 정체되기 시작. 청년 오스만인들이 주도한 제1차 입헌 혁명이 성공하면서 이슬람권 최초의 헌법이 만들어지고 의회를 여는 등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술탄의 반동 정치로 혁명은 좌절.
마흐무트 2세가 제국 개혁에 앞장 섰다. 기존 군대인 예니체리를 없애고 신식군대를 조직. 붉은 원통형의 이슬람식 모자인 페즈를 사람들에게 착용하게 함으로써 의복 근대화 추진.
이어 마지드 1세와 압둘 아지즈 때는 탄지마트(개혁)이 추진.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 할 것 없이 평등하게 생명과 재산을 보호. 조세제도 개편. 유럽식 교육제도 들여옴. 하지만 이러한 개혁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전문인력과 자본 부족으로 개혁은 실패.
압둘 마지드 1세는 서구화를 지향하고 국력을 새롭게 갖출 목적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돌마바흐체 궁전을 지음.
오리엔탈 특급열차가 오스만 제국을 달리기 시작.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이 되면서 위기를 맞음. 무스타파 케말이 터키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터키 공화국을 수립, 초대 대통령이 됨. 터키의 아버지(아타튀르크)라 불림.
아직도 케말은 터키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해마다 그가 숨을 거둔 시간인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이면 전국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모두가 묵념을 한다고 함. 돌마바흐체 궁전과 토프카프 궁전의 시계는 케말의 사망을 기리기 위해 9시 5분에 시곗바늘이 멈춰있다고 한다.
터키 공화국은 세속주의를 중심으로 근대화와 서구화를 추진. 터키 문자를 만들고, 페즈를 쓰지 않게 하고, 모든 국민이 성을 갖게 됨. 현재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대립, 경제 위기와 인플레이션, 유럽연합 가입 등의 과제가 있다.
터키는 이슬람교의 영향이 강한 나라이지만,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세속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히잡 사용 금지. 대학 내 히잡사용 금지법 등.
터키 자동차 번호판은 유럽연합의 다른 나라의 번호판과 같다. 유럽연합에 가입되기만 하면 그대로 사용가능하게끔 만들어 놓음.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에서는 쿠르드족이 분리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유목민족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독립을 주장했으나 터키 정부는 탄압. 현재도 분쟁지역.
3. 이스탄불 : 세계사의 축소판, 인류 문명의 박물관, 이희철 저, 리수 펴냄
2번의 책이 터키 전반에 관한 책이라면, 이 책은 이스탄불에 대한 이야기를 장소별로 해주는 책.
하지만 막상 내용은 비슷하다. 시간이 없다면 둘 중 하나만 읽어도 될 듯.
어찌됐든 이 책은 이스탄불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지만, 터키의 역사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이스탄불인 것 같다 ㅎㅎ
2번 책보다 이스탄불의 여러 건축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지만,
지도에 그 건물들의 위치를 표시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이 가이드북은 아니지만.
4. 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오르한 파묵, 민음사 펴냄
유명한 터키 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자서전.
실제로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을 떠나서 산 적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이스탄불에 대해 어렸을 때 추억부터 꺼내어 이야기 한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현지인의 이야기.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다 반납할 때가 되어 다 읽지 못하고 일단 반납 ㅎㅎ
자전 에세이지만, 술술 읽혀지는 책은 아닌데다 두꺼운 편이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읽으면 좋을 듯.
하지만 작가이니만큼 좋은 문장이 많았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그 슬픔에 있다. - 이흐메트 라심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 오랜 세월 동안 내 뇌리의 한구석에, 이스탄불 골목들 중 한 곳에, 우리 집과 비슷한 다른 어떤 집에, 모든 면에서 나와 비슷한, 아니 나와 꼭 닮은 또 다른 오르한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 불행할 때에는 또 다른 집으로, 또 다른 삶으로, 또 다른 오르한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갈 거라고 상상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 다른 오르한이라는 것을 약간 믿었고, 그 행복한 상상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상상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던지, 다른 집으로 갈 필요조차 없었다.
콘래드, 나보코프, 나이폴처럼 언어, 국민, 문화, 나라, 대륙, 더욱이 문명을 성공적으로 바꾸면서 글을 쓴 작가들이 있다. 그들이 창조적 정체성을 유배 혹은 이주에서 얻었던 것처럼, 내가 항상 같은 집, 거리, 풍경 그리고 도시에 매여 사는 것이 나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스탄불에 대한 이 예속감은, 도시의 운명도, 사람의 성격이 된다는 의미이다.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생 최소한 한 번은 자신이 태어난 상황과 시기의 의미를 묻는다. 우리가 세상의 이 곳에서, 이 시기에 태어난 의미는 무엇인가? 복권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에게 부여된, 사랑하기를 기대하고 결국은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성공한 이 가족, 이 나라, 이 도시는 공정한 선택이란 말인가?
각 세대의 거실을 꽉 채우는 이 모든 물건들이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위해 전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거실이 가족들이 평온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편한 장소가 아니라, 언제 올지 전혀 알 수 없는 상상의 손님들을 위해 만든 작은 박물관처럼 정리된 배후에는 물론 서구화에 대한 관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 텔레비전이 가정에 들어오기 시작한 1970년대 말에는 이 유행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화면 앞에 모여 앉아 양화나 뉴스를 시청할 때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즐거워하던 거실이 박물관에서 작은 극장으로 변했던 이 시기에조차 ..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행복한 몽상가와 불행한 정신분열증 환자 사이의 차이이다.
다음 해 같은 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실을 가득 채운 서른두 명의 학생에게 교사 한 명이 배당된 것을 보자, 편한 집과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는 슬픔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하나의 콤마가 되는 절망감이 더해졌다.
어떤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여행을 떠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어린 시절에 눈이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밖에 나가 눈싸움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눈 덮인 도시가 더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움이란, 눈이 도시의 진흙탕, 더러움, 균열, 방치된 곳을 덮어 버리기 때문에 생긴 새로움 혹은 경이로움의 느낌보다는 그것이 도시에 가져다줄 혼란과 재앙의 분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해마다 사나흘 정도 눈이 내리고, 도시는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눈에 덮여 있게 되지만, 이스탄불 사람들은 매번 마치 처음 내리기라도 한 듯 방심한 채로 눈을 맞이한다. 길은 차단되고, 전쟁이나 재앙이 일어났을 때처럼 사람들이 빵 화덕 앞에 줄을 서고, 더욱이 모든 도시는 눈이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어떤 공동체의 감정으로 하나가 되었다. 도시와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되어 자신들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눈 오는 날의 이스탄불은 더 한산할 뿐만 아니라 동화에나 나오는 옛 시절과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곤 했다.
5.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이나미, 안그라픽스
화려한 책표지에 눈길이 가서 빌려온 책.
디자인 쪽 일을 하는 저자와 20살 딸이 함께 한 이스탄불 여행기.
표지 사진인 키벨레 호텔이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예산 초과 호텔이라 다음 기회에 ㅋㅋ
초반에 재미있게 읽다가 뒤는 슬렁슬렁 읽었다.
2번 책을 읽고 전반적인 얘기를 알고 나니, 다른 책을 읽어도 반복이 되는 것 같아 열심히 안읽게 된다는 문제점이...
이제 역사나 에세이는 그만 읽고 오르한 파묵 소설을 읽어야 겠다.
여행 에세이에 나름 정보도 들어있어서 역사책이 싫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은 듯.
하지만 여행에세이라는 게 늘 그렇듯 사적인 이야기가 많아, 다양한 정보를 원한다면 적합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