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엘런 + 이병률 시인, 이채영 변호사의 대담
요즘 영화를 아주 자주 보고 있지만,
원래 영화를 자주 보지 않던터라 봐야지 마음 먹고서도 넘기는 영화가 꽤 있는데,
이 영화도 그럴 뻔 했다.
하지만 영화 상영 후 이병률 시인과 이제 막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채영 변호사의 대담이 있을 거라는 말에 급 예매.
요즘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원래 프랑스병에 걸려 사는 사람인지라 빠리가 정말 예쁘게 나온다는 이 영화는 봐야만 했던 것이기도 하다 ㅋㅋ
그런 기대를 가지고 영화관에 도착한 후, 시간이 남아 그제서야 대담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본다.
우선 이병률 시인.
그가 쓴 '끌림' 이라는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게 그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다.
나는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것에 무관심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꿈을 이뤄드립니다'를 쓴 이채영 변호사.
미국변호사구나.
아직 정보가 별로 없다.
그러고 나서 좀 더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때울까 하다가
가지고 온 책이 아깝다는 생각에 '느낌의 공동체'를 편다.
아주 천천히 읽고 있는 책이지만, 시평론이기에 띄엄띄엄 시간을 두고 읽어도 무리가 없다.
손택수 시인을 지나 다음 장으로 넘긴다.
이병률
세 글자가 보인다.
응? 내가 오는 보러 온 그?
일단 평론을 읽는다.
읽으면서도 아닌가보다.. 라고 생각한다 ㅋㅋ
사실 '끌림'으로만 접했던 그이기에 그의 시에 대해 알지 못한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 '화분' 중에서
가슴이 철렁한다.
계속 읽어 내려가니, '끌림'을 썼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 오늘 만나게 될 사람은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구나.
상영관 입구에 그로 추정되는 사람이 보인다.
흠.. 생각보다 젊어 보인다.
하지만 대개 저런 느낌을 가진 사람은 그날의 중요 인물이 맞다.
입구에서 대담을 하는 두 작가의 책을 팔고 있다.
이 평론을 읽지 않았더라면 사실 오늘 그의 새 책을 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직 쌓여 있는 책은 많은데 도통 책이 안읽히는 요즘이라.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시에서 끌림을 느꼈다.
가격도 할인해서 판다.
한 권 주세요, 라며 어느새 돈을 내고 있다.
사인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라는 말에 네? 라고 되묻는다.
영화 끝나면 여기서 사인회도 진행된다고 한다.
아, 사인을 받을 수 있구나.
사실 사인을 잘 받지 않는다.
내가 이제까지 책에 그 작가의 사인을 받은 적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없는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는.
그런데 뭔가 기대가 된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그가 서 있다.
그의 책을 들고 있는데 뭔가 수줍다 ㅋㅋ
마침 뒤에서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요즘 작가들은 참 젊게 사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이제서야 본격적인 영화 관람 ㅋㅋㅋ
오늘은 몇 포털 사이트에서 공동으로 이벤트로 표를 나눠주는 날이었다-나는 내 돈 주고 봤지만 ㅋㅋ
아트하우스 모모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봤다.
사실 영화 시간을 기다리면서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으면 어쩌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단지 내 걱정일 뿐이었다 ^^
내용이 재미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인디 영화를 볼 때 느끼지 못했던 함께 웃는 순간이 많았다. 새로운 느낌.
이제 정말 영화 이야기! ㅋㅋ
시작부터 두근두근. 애써 찾아 보지 않던 빠리의 모습을 이렇게나 큰 화면으로 보다니.
게다가 이렇게 예쁘게 찍어 놓은 빠리를 말이다.
어제 갔던 씨네큐브에서 이 영화가 연속으로 매진된 이유가 있었다.
유쾌하고 예쁘고 음악도 좋고 보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현재보다 앞 선 시대를 동경하는 쥘.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
마법과도 같이 시대를 거슬러 가 유명인들을 만나며 자신을 찾아 간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죽음이 두렵지가 않다는 말.
그런 느낌을 갖는 여인을 만나지만,
그 여인 또한 자신처럼 앞 시대를 동경한다.
잘 맞지만 쿨하게 이별을 하는 두 사람 ㅋㅋ
그런 장면이 나온다.
현실의 약혼녀와 큰 틀은 맞지 않지만, 작은 틀은 맞다는, 예를 들자면 둘 다 인도음식을 좋아한다고.
반대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큰 틀은 맞지만 작은 것들이 다 맞지 않는.
큰 그림을 같이 그릴 수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최종 목표는 같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많이 힘들었다.
재미로 봤던 궁합에 나왔던 말처럼,
이렇게 다른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사이이기에 나나 그 중 한 사람이 맞춰야만 유지되는 관계였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서로를 위해 자신을 조금씩은 희생할 수 있어야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만나다보니 어느새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과연 이게 행복한 것일까?
그와 있을 때면 수많은 나의 취향을 감추고 있는데, 이게 정말 나인 걸까?
정답을 알면서도 한참을 더 만났다.
그 언젠가 끝이 오리라 생각하며.
그리고 언젠가 그 끝이 왔다.
풍경을 보며 황홀해하고,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의 모습을 보며 신선함을 느끼고,
귀에 착착 감기는 음악을 들으며, 곳곳에서 나타나는 유머에 웃어대다보니 영화는 끝나 있었다.
영화에 대한 여운을 느끼는 것도 잠시, 대담이 시작되었다.
대담의 목적은 새로운 책과 작가를 소개하는 것.
대학졸업 후 금융계에서 법조계로 옮기고, 사람들에게 나눔을 줄 수 있는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는 이채영 변호사.
외국에서 성공한 각 분야의 9명의 인사들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이병률 시인의 질문과 그에 대한 이채영 변호사의 답변이 오고가고,
관객들의 질문시간도 가졌다.
나는 호기심은 많은 사람이지만, 손을 들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아니기에 열심히 듣기만 ^^
이럴 때면 주입식 교육에 철저하게 적응한 사람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ㅋㅋ
일하면서 더 심해진 것 같고.
꿈을 써보는 것 혹은 주변 사람에게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의 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아도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는 것.
꿈을 이루고 또 다른 꿈을 찾아가는 에너지.
힘든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현실에 막혀 숨겨 두었던 꿈을, 이번엔 해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꿈을.
꿈을 이룬 사람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자니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나도 저렇게 반짝거리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빛을 잃었나.
운명론자인 나에게 요즘 한결같은 메세지가 전해져온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한 때 즐겨 들었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It's time to brave.
한 번에 A에서 C로 갈 수도 있고, A에서 B로 간 후 C로 갈 수도 있고,
A와 C 사이에 수많은 A' B' 등이 존재할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C가 단 하나이고 명확하다면 망설일 것 없이 달리면 되겠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이런 C에도 도달해보고 싶고, 저런 C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그 하나하나가 그렇게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지만, 다채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
지금의 내 상황이 내 영혼을 1그람도 고양시켜주지 않는다는 건 슬프게도 사실이지만,
여기서도 분명하게 얻는 건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또 무언가를 얻어가고 있을테니까.
결론은 하나다.
움직여야 한다는 것.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대담이 끝나고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인을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서 있는 시간, 사인을 받는 시간 모두 어색했다.
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오리지널팀 배우들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은 건 있구나.
오늘의 컨셉과 맞아 떨어져서 써 준 문구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기대하던 멘트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있다.
어딘가 모르게 찌그러진 듯한 보름달,
어두운 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빛나는 그 달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집까지 두 정거장의 거리를 걸어 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오늘은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걷다 보면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며 나를 데려다 줄 차를 만나게 될 것만 같다.
Midnight in Seoul에서 나만의 Belle Epoque 혹은 Bel Endroit 로 데려다 줄.
그곳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도 혼자이지 않길 바란다.
유명인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과 만나 나에 대해, 내 꿈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정답을 찾고 싶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집으로 가는 길엔
바람이 분다.
아직까지도 많은 방황을 하고 있지만,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하는
당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