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은 그냥 여행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 심장이 끄덕끄덕했다.
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 자,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나에게도 여행은 시간을 버리거나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 것이다.
일상에서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게 시간이지만 여행을 떠나서의 시간은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 사실 여행을 떠나 있을 때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쪽이질 않은가.
3#
작은 방을 올려다보았다
한때는 소호였다. 사무치게 살고 싶은 곳. 그곳에 가면 내가 살면서 앓던 모든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지내고 속해 있던 고만고만한 세계가 흠씬 두들겨 맞는 느낌이랄까. 오래전 한때의 소호는 그런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동네였다.
5#
그날의 쓸쓸함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넘쳐 보이지만, 지금 당장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금이 가 보인다. 넘치는 것은 사랑 때문이며 금이 간 것도 사랑 때문일 텐데 그 차이는 적도와 북극만큼의 거리다.
19#
언젠가는 그 길에서
갔던 길을 다시 가고 싶을 때가 있지.
누가 봐도 그 길은 영 아닌데
다시 가보고 싶은 길.
그 길에서 나는 나를 조금 잃었고
그 길에서 헤맸고 추웠는데,
긴 한숨 뒤, 얼마 뒤에 결국
그 길을 다시 가고 있는 거지.
아예 길이 아닌 길을 다시 가야할 때도 있어.
지름길 같아 보이긴 하지만 가시덤불로 빽빽한 길이었고
오히려 돌고 돌아 가야 하는 정반대의 길이었는데
그 길밖엔, 다른 길은 길이 아닌 길.
21#
평범식당
나도 나 스스로를 M사이즈라고 여기는 적이 많다. 옷도, 사람도 실제로는 L이어야 하지만 때로 XL이겠지만 나는 나를 M이라는 상태로 놓아둔다.
24#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에 비하면 나는 뭔가를 남기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 소비해버리고 먹어치운다. 물질도 마찬가지고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필요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비축해두지도 않을 뿐더러 이자처럼, 도시락의 한귀퉁이처럼 남겨진 그걸 어쩌겠다고 뒤돌아보는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다음을 위해 조금씩 떼어두는 연습을 하지 않는 다면 그 무엇도 기억할 수 없을 거라는 무섭고도 무거운 사실만 이제 조금 인정할 뿐.
그 빵집은 반죽을 남기는 게 아니라 기록을 남긴다. 그 기록을 반죽해 기적을 굽는다.
26#
잘 다녀와
나에게도 '빨간 날'들로만 가득 찬 날들이 있었다. 나에게도 말을 걸기 위해 비행기를 탔고 나에게 말을 거느라 눈이 시뻘게지도록 걷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심심하면 케이크 한 상자를 사서 하루 종일들고만 다녔다. 매일매일이 기념일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원고를 쓰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흙도 비가 내린 후에 더 굳어져 인자한 땅이 되듯 너의 빈집도 네가 없는 사이 더 견고해져 너를 받아들일 것이다. 형편없는 상태의 네 빈집과 잔뜩 헝클어진 채로 돌아온 네가 서로 껴안는 것. 그게 여행이니까.
28#
네가 골라놓은 당근을 먹었다
문득, 아니 오래전부터 난 참 사랑을 못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아무리 목숨을 걸어도 목숨이 걸어지지 않는, 일종의 그런 운명 같다. 이래서 사람이 안되는 것도 같고 아무도 나를 사랑할 것 같지 않으며 사랑이 와도 바람만큼만 느끼는 것. 그래서 내 사랑은 혼자 하는 사랑이다. 사랑은 순례의 길과도 같아서 그 길을 통해 자기가 완성되어야 한다는 이기적인 속성이 있다. 아니 그 속성만 있다. 그 속성으로 구원받고자 함이 사랑이라면, 사랑하다는 말은 대단한 말이 아니라 구원받겠다는 말이다.
29#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달라고
단언컨대 술은 마음에 몸에 색을 밀어올린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혼자 술을 마시는 작업'은 내 색깔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너무 많은 색깔을 이해하려 했으므로, 고로 나는 시끄러웠으므로 나를 이루고 있는 색들을 쫓아 내고보자는 셈인 것이다.
비닐하우스의 비닐 같은, 유리창에 달라붙은 습기나 증기 같은, 일단 내 목표는 당분간 무의미한 색을 띠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심각하지 않은 작업은 곧 재미를 잃을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나다운 색으로 되돌려질 것이란 것도 알고는 있다. 다시, 사람을 찾을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있는 건 슬픔의 색깔이다. 슬픔으로 지금까지의 삶을 그나마 지탱해왔다면 이해가 쉬울까. 슬픔의 냄새와 슬픔의 더께가 가득 들어찬 내 마음은 그래서 뚱뚱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정체가 무엇인가를 따져보면 슬픔이 맞다. 약기운 같은 슬픔. 말갛고 탁한, 흰색에 가까운 액체를 뚝뚝 흘려 모으다가 어느 날 그것들을 치우고 그 자리를 말리는 일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면 당신은 이해가 쉬울까.
그 슬픔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 슬픔을 받아들인 적 없는데 어느새 스며든 그 슬픔이 한 사람을 정복하고 있는 것뿐. 슬픔이 있어서 나는 곤하지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고 유랑할 수 있었다.
삶이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될 때마다 어김없이 눈은 내렸고 그것은 기적이었다. 눈이 쌓이듯 슬픔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마다 문득문득 살고 싶어졌으니 그것은 기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의 색, 슬픔에게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34#
조금은 바보 같아도 좋다
열정을 다해서 끝까지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면서, 전속력을 다해 하고 싶은 것 가까이 갔다가 아무 결과를 껴안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연습을 하면서 우리도 살고 있지 않은가. 오늘 하루도, 내일 하루도 아니 어쩌면 영원히 그 연습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나도 그를 따라 같이 웃기는 했지만 누가 내 모습과도 너무 꼭 닮은 것 같아 얼른 웃음의 꼬리를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