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만 해도 그리 흔치 않던 혼자 사는 사람의 수가 선진국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 일부는 사회 고립의 증가로 보거나 심지어 나르시시즘의 한 형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가져온 조건들을 연구해보니 개인주의와 풍요로워진 관계가 뒤섞인,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미묘한 맥락이 드러났다.
구약성서 첫 장을 보면 하나님은 매일 한 가지 일을 행하며 세상을 창조한다. 하늘을 만들고 땅과 빛,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을 만든다. 그리고 창조물마다 흡족하게 바라보며 '보기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담을 창조했을 때 분위기는 바뀌었다. 피조물인 인간의 불완전함을 발견한다. 그는 인간이 혼자인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는 아담과 함께할 이브를 창조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고독을 물리치려는 화두는 신학 영역을 벗어나 철학과 문학의 모태가 되었다. 그리스 시인 테오크리토스는 "인간에게는 영원히 인간이 필요하다"고 확언했고, 스토아 철학에 심취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에 비유했다. 단체 생활의 필요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가족을 발명한 것이다. 어느 시대든, 어느 문화에서든, 사회 및 경제 생활의 기초는 개인이 아닌 가족이다. 진화론자들은 원시사회조차 단체 생활이 안전뿐 아니라 영양과 번식의 측면에서 생존 투쟁에 결정적 이점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지난 50년간 인간은 일찍이 겪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나이나 여건과 관계없이 고독하게 혈혈단신으로 살기를 결정한 개인의 수가 증가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미국인들 대부분은 일찍 결혼해 죽을 때까지 함께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죽으면 남겨진 다른 한 사람은 바로 결혼했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이 늦어지고 지속 기간도 짧다. 미국의 PEW 연구센터에 따르면, '첫 결혼의 평균 연령이 지난 50년간 5년 늦춰지면서 전례 없이 최고 수준'(1)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혼이나 사망, 결혼을 원치 않아 홀로 사는 기간이 수년, 심지어 수십 년에 이른다. 따라서 인생주기 면에서 가족은 한시적이거나 조건부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졌다.
'병자', '비도덕적인 것' 또는 '신경증 환자
이런 현상이 확대됨에도 독신의 삶은 잘 이야기되지 않고, 또 그러다보니 우리 시대에서 가장 이해받지 못하는 주제 중 하나다. 독신자 개인도 주변과 마찬가지로 이런 삶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간주한다. 혼자 산다는 것이 점점 공통의 조건이 되는 만큼, 이것이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경향이 공공 토론의 주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또 논평가들은 심리적 또는 사교상 문제로 접근해 나르시시즘, 자폐성, 또는 '함께 살기'가 붕괴되는 징후로 본다. 하지만 이처럼 극적인 변화가 미디어에서 내보내는 이미지처럼 비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훨씬 흥미진진하고 소외도 심하게 겪지 않는다.
'나 홀로' 삶의 확산은 대대적인 사회 변화의 경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도시 공간(주거 공간, 교통 수단 등)의 개념을 바꾸고 개인 맞춤 서비스(집 관리, 아이 돌봄, 음식 배달 등) 경제를 발전시킨다. 성장하고 늙고 죽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사회 집단과 거의 모든 가족을 변화시킨다.
'싱글턴'(Singleton)의 급증을 전형적인 미국적 현상으로 보기 쉽다. 문학비평가 헤럴드 블룸은 이를 두고 "각 개인의 자신에 대한 종교"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변화를 주도하는 동력은 미국 문화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그 증거로 오히려 미국은 이같은 변화에서 후발선상에 있어 개인주의 경도가 덜하다고 알려진 나라들보다 뒤처진다. 통계적으로 홀로 살기에 가장 좋은 나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이다. 이 나라에서 싱글턴은 전체 가구의 40~45%에 육박한다. 역사적으로 가족주의에 기반해 사회생활이 이뤄지는 일본에서 오늘날 이 비율은 30%에 달한다. 독일, 프랑스, 영국뿐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에서도 이들의 비율은 미국보다 높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전통 산업 강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인도, 브라질에서도 그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 소재한 시장 분석 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의 보고서에 따르면, 독신자 수는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96년 1억5300만 명에서 2006년 2억200만 명으로 늘어나 10년 만에 33% 증가한 셈이다.(2)
이 극적인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까? 분명한 것은 이 인구 구성 변화가 야기된 것은 경제성장 및 물질적 안정과 연관되어 있다. 달리 말해 싱글턴이 많아진 것은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1957년 행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과반수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병자', '비도덕적인 것', 또는 '신경증 환자'로 보았고, 단 3분의 1만이 무의견이었다. 그러나 한 세대 뒤인 1976년 조사한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다. 3분의 1만이 독신에 부정적이었고, 전체 의견의 반은 무의견, 심지어 7명 중 1명은 독신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 오늘날 독신자가 기혼자 수를 넘어선 마당에 그런 설문조사를 한다는 것은 설문조사 기관이 어느 곳이든지 이상하게 비칠 것이다. 결혼 생활 거부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규정짓던 경향은 크게 바뀌었다.
타인과 얽힌 관계보다는 운명을 개척하고 더 나은 기회를 잡는 능력을 통해 성공과 행복을 찾는 현재의 지배적인 이념을 보여주는 증거다. 자유, 선택의 고민, 자아 실현. 현대의 지혜를 보여주는 미덕이다. 인구학자 앤드루 철린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우리는 배우자나 자녀에 앞서 우선 나 자신에게 할 도리를 해야 한다."(4)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혼을 원하는 누군가는 우선 자신의 이혼 요구를 정당화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의 논리로 진화하고 있다. 결혼 생활이 한 개인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이제는 최대한 빨리 종지부를 찍지 않도록 결혼 생활이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 그만큼 '자신이 좋은 대로'라는 정언이 지배적이다. 또 이런 변화는 거주지에 대한 애착 약화로 나타난다. 미국에서 이사가 그만큼 잦아지면서 사회학자들은 '제한적 참여 공동체'(5)와 같은 이웃 환경 개념을 들고 나왔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임금, 불확실한 내일 같은 특징이 있는 일터도 마찬가지다. 생존하기 위해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와 엘리자베트 베크게른스하임은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이 사회 재생산의 기초 단위가 되어가고 있다"고 언급했다.(6)
개인 중시가 지배적 사상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였지만, 산업화된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며 4가지 주요한 사회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부터였다. 4가지 주요한 변화는 여성 인권의 인정, 통신 수단의 발달, 도시화, 기대 수명의 연장이다. 이같은 4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서구에서, 그리고 그 외에서도 개인주의와 독신 생활 확산에 유리한 여건이 만들어졌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한다
우선 여성의 사회적 부상이다. 부분적이고 미약했지만 1950년대 여성이 얻어낸 승리는 하나의 혁명이라 할 만하다. 즉 교육을 받게 되고, 일을 통해 경력을 갖고, 가정 생활과 성생활을 주도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지금처럼 고등교육과 일에서 남성과 여성 간 성비 균형이 이뤄진 적은 처음이다. 물론 성차별은 아직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동시에 여성이 피임을 주도하고 출산을 조절하면서 결혼은 늦어지고, 별거와 이혼은 급증하게 되어, 전통적인 남녀 관계의 틀이 완전히 깨져버리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50년 전에 비해 결혼해서 이혼할 확률이 2배 높다. 한 여성이 배우자와 헤어지고 홀로 살기를 택한다고 영원한 금욕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스탠퍼드대학의 사회학자 마이클 로젠펠드의 설명처럼 이제 많은 30대 중산층 여성은 '제2의 청춘기'를 상심 없이 들뜬 마음으로 즐기고 싶어 한다. 로젠펠드는 이 쾌락주의가 그가 말한 '독립시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즉 혼자 살게 되면서 다른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것이다.(7)
개인 중시 현상은 통신 수단 혁명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통신 수단 혁명으로 인해 외출하지 않고도 사회생활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940년에는 미국의 3가구당 단 1가구만이 전화기를 보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 비율은 63%로 올랐다. 오늘날 미국인 중 95%가 전화기를 갖고 있다. TV는 확산 속도가 더 빠르다. 책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정치학자 로버트 푸트남은 1948~58년 TV를 보유한 미국 가구 수는 1%에서 90%로 증가한 사실을 언급한다. 20세기 후반 10년간 이 판을 뒤흔든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TV가 갖는 관계의 잠재성과 시청자의 수동성을 결합시켰다. 네티즌은 이제 누구와 어디에서든 어떤 때든 소통이 가능할 뿐 아니라, 블로그를 만들고 유튜브(YouTube·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영상을 배포하면서 지구촌 대중과 제한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개인은 고독하면서도 접속하고, 직접 접촉이 없으면서도 관계를 확산시킬 수 있다.
싱글턴 대부분은 서로를 연결하는 또 다른 수단이 있다. 바로 집에서 나와 도시가 제공하는 사교 생활을 이용한다. 전세계 개인주의 확산의 세 번째 동력은 바로 도시화이다. 대도시에는 온갖 종류의 순응거부주의자들이 몰려든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대도시에서 그들과 비슷한 사람을 맘껏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과 취미, 삶의 방식에 따라 개인의 모임을 활성시키면서 도시화는 하부 문화를 창출한다. 하부 문화는 번성하고 자리잡아 지배 문화에 유입된다. 역사학자 하워드 추다코프는 19세기와 20세기에 초점을 맞춰, 엘리트 백인 독신 남성이 술을 즐기는 클럽, 사적 주거 공간, 자유분방한 문화 등 새로운 삶의 양식이 시카고나 뉴욕 같은 도시를 어떻게 변모시키는지 보여주었다.
수십 년간 하부 문화는 도시 생활의 문화 코드를 변화시키며 점차 확산되었다. 결국 별난 특징이 정상적인 것으로 변했다. 오늘날 부유한 독신자는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기 위해 더 이상 흡연실이나 밀실에 홀로 고립될 필요가 없다. 이제는 헬스장, 바(Bar), 아파트, 음식배달업자, 세탁소 등 어느 장소든 어떤 서비스든 선택의 여지가 많다. 도시족(Urban Tribes)의 에탄 워터스가 강조하듯이 독신자들은 혼자 살기 위해 서로 도울 수도 있다.(8)
독신 생활을 대세로 만든 네 번째 변화는 공동의 성과물이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사람들이 점점 오래 살면서 혼자서 늙어가는 경험도 점점 보편적 현상이 되고 있다. 1900년 미국에서는 10%의 노인만이 혼자 살았다. 1세기가 지난 후 그 비율은 62%로 늘고 있다(9).
혼자 늙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인들이 겪는 일상적인 어려움, 즉 은퇴 준비와 질병 치료, 쇠약해지는 몸을 인정하고 가까운 지인이 하나둘씩 가버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혼자 겪을 때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주 심한 고통은 아니다. 영국에서 행한 한 연구에서는 배우자가 있는 노인보다 독거노인이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치료와 보살핌을 주는 사람들(간호사, 의사, 입주 간병인)과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십 년 전부터 노인들은 가족과 합가하거나 친구 집이나 양로원에 가는 것보다는 자신의 집에서 혼자 살기를 선호하는 추세다.(10) 이는 미국의 전형적 현상이 전혀 아니다. 일본, 독일 어느 곳에서든 혼자 늙어가는 삶은 전통적으로 몇 세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모델에 익숙한 집단에서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11)
혼자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종종 하나의 목적 때문에 그렇게 한다. 개인의 자유, 자신에 대한 통제, 자아 실현 같은 신성불가침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사춘기 이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존재를 이끄는 가치인 것이다. 독신의 삶은 각자의 방식대로 원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자신보다는 배우자의 욕망과 필요를 고려해야 하는 지겨운 의무로부터 자유롭다. 그 때문에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에 포위당한 시대에 싱글턴 위치는 꽤 많은 이점이 있다. 그것은 회복 가능한 고독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혼자 사는 것과 고독으로 괴로운 것은 별개 문제다. 고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사람 간 교류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점을 많은 연구결과가 방증하고 있다. 즉, 혼자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
글 / 에릭 클리넨버그 Eric Klinenberg 미국 뉴욕대학 사회학과 교수. <Going Solo, The Extraordinary Rise and Surprising Appeal of Living Alone>(펭귄출판사·뉴욕·2012)을 출간했다.
번역 / 박지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 그린피스 한국지사 근무.
(1) <The decline of marriage and rise of new families>, Pew Research Center, Washington, DC, 2010년 11월. (2) Euromonitor International, ‘Single living: How atomisation -the rise of singles and one-person households- is affecting consumer purchasing habits’, 2008년 7월. (3) Frank Furstenberg Jr, Sheela kennedy, Vonnie McLoyd, Ruben Rumbaut, Richard Settersten Jr, ‘Growing up is harder to do’, Contexts, n°3, Berkeley, 2004. (4) Andrew Cherlin, <The Marriage-Go-Round: The State of Marriage and the Family in America Today>, knopf, NewYork, 2009. (5) ‘제한적 참여 공동체’라는 표현은 Morris Janowitz가 처음 썼다. The Community Press in an Urban Setting, Free Press, Glencoe, 1952. (6) Ulrich Beck과 Elisabeth Beck-Gernsheim 공저, <Individualization: Institutionalized Individualism and Its Social and Political Consequences>, Sage, Londres, 2002. (7) Michael Rosenfeld, The Age of Independence: Interracial Unions, Same-SexUnions, and the Changing American Family,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2007. (8) Ethan Watters, <Urban Tribes: A Generation Redefines Friendship, Family, and Commitment>, Bloomsbury, NewYork, 2003. (9) Claude Fischer et Michael Hout, <Century of Difference: How America Changed in the Last One Hundred Years>, Russell Sage Foundation, NewYork, 2006. (10) Dora Costa, <The Evolution of Retirement: An American Economic History, 1880-1990>,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11) Robert Ellickson, <The Household: Informal Order Around the Hearth>,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8.
싱글턴들의 세상
‘싱글턴’이란 홀로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독신자와는 구분되는 집단이다. 독신은 동거인이나 부모, 자녀들과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독신자는 ‘짝’이 있지만 혼자 사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 3가구 중 1가구는 싱글턴
1950년 미국 성인 중 22%가 자신은 독신이라고 신고했다. 당시 독신 비율이 집중적으로 높은 지역은 인구가 적고, 알래스카·몬태나·네바다처럼 경제성장률이 높은 서부 지역의 주였다. 높은 경제성장 덕에 여성 이민자 노동력을 끌어들였고, 이들에게 독신은 관례적 가정 생활로 들어가기 전 의무적인 중간 단계였다. 2012년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독신이고 3100만 명이 싱글턴으로 살고 있다. 여기에 호스피스, 양로원, 교도소에 홀로 안치된 800만 명을 더한다. 혼자 사는 사람(애정관계 상관없이)은 미국 전체 가구의 28%인데, 자녀가 없는 부부에 뒤이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이다. 그 수가 핵가족이나 대가족의 수를 압도한다. 싱글턴 인구는 대다수가 여성(여성 1700만 명, 남성 1400만 명)이고, 중·장년층(1500만 명 이상이 35~64살)이다. 당연히 혼자 사는 사람 중 노인의 비중이 높지만(1천만 명이 64살 이상), 18~34살 성인 집단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1950년에는 50만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500만 명에 달한다.(1) 나이 든 사람과 달리 오늘날 젊은 싱글턴은 미국 전역, 특히 대도시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워싱턴·시애틀·덴버·샌프란시스코·미니애폴리스·시카고·댈러스·뉴욕·마이애미는 독신자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다. 뉴욕에서 싱글턴은 100만 명에 달한다. 맨해튼에서는 전 주택의 반 이상에 이들이 살고 있다.
(1) 여기서 언급된 통계는 미국 통계국의 데이터이다. |